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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관련 책을 읽고.. 과연 누구를 위한 권력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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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김경찬 조회수 596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그때,그때 자료를 수집하는게 취미 였다.


대학교 때부터 해서...   예전에 시간이 많을땐 전공과 관련된 책을 읽고 내 나름대로 느낀점이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나 새로안 사실등 워드로 써놓고 자료로 보관한게 의외로 많다.


지금 한 자료가 있네요.  책 이름은: 물론 북한관련서적 이죠.. ㅎ  이 책을 공개하면 괜히 장사,상업적으로 이득을 취하는거 아니냐고 오해를 할까봐..!!   공개는 안 하겠습니다.


여하튼 책을 읽고 그 당시 내 생각을 쓴 자료를 다시 읽고 회고해보니 느낌이 색다르다.


그럼 그 자료를 대강 편집하고 그 글을 올려보겠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누구,어떤걸,무엇을 위한 권력 이었나? 새삼 묻고 싶다.


해방 직후에 북한에는 여러 파벌이 존재했다. 각 파벌은 자신의 사상을 기반으로 형성된 정체성을 사회에 공유하려 했다.


필연적으로 파벌 사이에 권력 투쟁이 일어났다.  투쟁의 성패는 변화하는 대내 및 대외 정치 기회구조 사이에서 각 파벌이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달라졌다.


최후의 승자는 김일성이었다.  김일성은 6.25전쟁을 겪으며 ' 파벌의 경쟁과 연합시기 '를 "패권적 연합질서" 로 전환했고, 8월 종파사건을 통해 권력을 온전히 장악했다.


김일성은 뛰어난 정치술을 가진 사람이었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자신의 사람을 동시에 처리했다.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단죄하지만, 동시에 관용을 베풀었다. 인사정책에서 파벌들의 비율을 고려했다.  반대파를 제거해도, 단순 가담자는 포용했다. 


필요할 때는 사회주의의 적인 지주와 자본가들을 포용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또한 그는 정치기회구조를 냉철하게 파악했다.  전쟁으로 독점된 권력을 활용해 박헌영파를 숙청하는 등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기회구조를 확실하게 이용했다. 


자신의 권력을 위협한 쿠데타인 8월 종파사건의 주모자들을 중,소의 압력에 맞춰 유연하게 처벌하는 등 불리한 정치기회구조에는 몸을 낮출 줄 알았다.



<{ 김일성의 융통성과 정치력의 바탕은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투쟁 시, 장기적으로 이루어내야 할 목표인 기본 강령과 생존을 위해 취해야 했던 행동 강령을 구별하면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이다.}>

 (404page) 



자신이 가진 사상과 정체성을 고집하여 외부 정치기회구조에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해 몰락한 오기섭, 조만식 등과는 대조적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려면 권력을 잡아야 했다.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었다. 교조주의, 형식주의, 수정주의 등 모든 사상은 비판을 하려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김일성은 뛰어난 정치술로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북한의 인민들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정치술을 있었지만 , 정치는 없었다.


악마를 잡기 위해 악마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권력을 잡은 순간 악마와 다를바가 없어진 것일까.  


현실에 맞춰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정체성을 움직인 김일성은 악마가 되어 있었다.


일제에 맞서 투쟁하던 빨치산의 손에서 일제에 못지않은 정치가 펼쳐졌다. 각각의 사상과 정체성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다.  


김일성은 뛰어난 정치술을 활용하여 사상과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고 권력을 잡아갔으나, 일단 잡는 순간 더 이상 그의 사상과 정체성의 한계를 견제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현실에서 나온 사상이 현실을 잡아먹었다. 현실을 해석한 사상이 오히려 현실을 규정했다.


결국 사상이 취할수 있는 행동을 제약하고, 국민을 위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파벌 간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인간개조 및 사회개조로 나아갔다.


하지만 국가는 부유해지지 않았다. 사상적 요소로 인한 물질적 요소의 실패는 권력의 정당성을 침범하게 되었다. 그 모순을 극복하기위해 군부가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기간 남한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상황은 비슷햇다. 전쟁중에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이 되었고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전통이 없었다.  


역사적으로 왕은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독재자가 탄생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제도였다. 


물론 형식적으로 도입된 남한의 제도는 독재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도가 함의하는 사상과 정체성은 집권 세력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위협했다. 


주기적으로 실시되는 투표는 시민의식을 깨웠고, 성장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개인의 힘을 키워갔다.  그 결과 남한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북한은 김씨일가가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 


김일성과 같은 사람이 남한에 있었으면,  그의 능력을 볼 때 권력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남한이 북한과 같은 왕조 국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구조는 권력자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한국 제도의 우월성이 아니다. 설사 제도가 옳지 못한다고 해도, 올바른 정치인이 권력을 잡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권력을 잡기 위해 부정의한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과정 속에서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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