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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적들

대한민국 최강! 센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품격과 저품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시사 쇼!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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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조선소 탄생일화(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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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6정원호 조회수 424


조선소 건설 신화의 주역 -박대통령과 정주영 회장 


16년을 끌어오면서 박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했던 가트(GATT) 가입(1967년 가입)이 성사되면 70개 회원국들을 상대로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고 그만큼 수출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국내 산업기반이 경공업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경공업 중심의 노동집약산업으로는 경제성장의 한계를 절감했고
돌파구는 중화학 공업 추진에 있다고 판단한 박대통령은
중화학 공업을 가시적으로 역동시킬 수 있는
1단계 산업으로 조선 산업을 선택하게 됩니다.
물론 초기는 산업화까지 미치지 못하는
단순한 조선공업 수준이 된다해도
거기에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미래가 있었는데,
그것은 조선산업은 기계, 전자, 운송, 항만산업과의 연관효과가 커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국방을 위해서도 조선산업을 시작해야 되며, 조선산업에 일찍 뛰어 든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조선소 건설은 대통령이 선언한 4대 핵심공장 중의 하나였으며
제3차 5개년 계획의 최대 핵심 중의 하나가
조선소 건설이었고 특히 관련 산업은 물론 모든 산업을
업그레이드 시켜 경제발전의 새로운 분기점을 마련한다는
상징성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소 건설은 박정희 대통령의 숙원사업던 것입니다.

당시 김학렬 부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그러한 관심과 집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적으로 했던 정주영 사장을 다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학렬 부총리는 경제건설에 있어서는
박대통령의 분신처럼 서있었고.
그는 조선소 건설에 필요하다면 법제정부터
할 수도 있다며 의욕을 보였고..
비록 그것이 국민들에게 용기와 꿈을 부풀게 하는
제스처이더라도 이 시점에서는 필요했고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도약에 대한 집념과 열정...
김학렬 부총리는 박 대통령의 그러한 열정과 집념에
여러번 눈시울을 적신적이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공업 중심의 산업과 수출구조로는 경제를 도약할 수 없고
따라서 중심구조인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
중공업 종학육성정책을 마련하게끔 하였습니다.
또한 전략업종 중에서도 철강과
조선공업은 성공시켜야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제 3차 5개년 계획에서부터
중점 육성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대통령의 중심구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조선소건설을 정부로부터 제안받은 현대 정주영 사장은 조선소 건설을 위한 기술제휴와 차관도입을 위해 일본, 캐나다, 미국의 몇몇 회사와 접촉하였으나 한국과 같은 나라는 조선소 건설의 역량이 없으며, 차관을 절대 빌려 줄 수 없다고 한다.
정주영 사장의 미국에서의 성과는 시원찮았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받은 대접은 문전박대나 다름없었으며
일본의 조선업계가 홀대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난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와 김학렬 부총리가 정주영 사장의
선물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시점에서는 현실적으로 현대밖에는 추진할 기업이 없었던 것입니다. 정회장도 인력 스카웃을 해가며
조선사업추진팀까지 구성을 마쳤지만 결과는 낭패였습니다.

정주영 회장을 두고 이한림 장관은
김학렬 부총리 앞에서
정회장은 토목쟁이며 조선소 건설은
기계, 전기, 전자, 터어빈같은
주로 중공업 기술을 요하는 것이지 길을 닦거나
집이나 건설하는 그런 토목이 주된 공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현대로서는 그러한 기술집약적이고 막대한 자본이 드는 조선소 건설을 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선업합니다.

그러나 이 조선소 건설이 좌초되면서 경제기획원 중심으로
경제부처는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부총리는 어차피 조선소 건설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을 해서
청와대 경제비서관실과 상공부 등에서는
다른 방안을 찾느라고 고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정부가 이미 경공업 우선정책에서 벗어나 조선공업을
주요 수출전략사업으로 육성시킨다는 목표아래
필요한 법제정까지 서두르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자금부족과 관련공업의 수준미달,
그리고 선박수주 불가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학렬 부총리는 현대 정주영회장과 박대통령의 면담을 주선하고, 현대 정주영 회장은 박대통령 앞에서 조선소 건설을 포기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한마디에 박정희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이 갖고 온 사업계획서는 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가 절실히 원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하는 사업인데, 이렇게 쉽게 못하겠다는 말씀이 나오시오? 대통령이 자존심을 걸고 추진하려는데 기업이 무시하는 것은 국가를 경시하는 것이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 반대에도 무릎쓰고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고속도로를 건설한 정주영 회장이 맞소?”

그리고 나서 박대통령은. 현대가 어떤 사업을 하겠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는 이제부터 현대에게 일체의 도움을, 어떤 사업을 하든 관심을 갖지 말라는 말을 꺼냅니다.

정회장의 보고를 아예 차단시켜버리며
박대통령은 억제했던 분화구를 절제없이 터뜨렸습니다.
그동안 4대 핵심공장 건설을 내세우며
경제부흥을 가속화시켜야 되겠다던
대통령의 염원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대통령의 추궁은 정회장에게 계속되었고..

박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에게 다시 한번,
조선소 건설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고....
대통령이 지원을 하고 경제총수인 부총리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결국 정주영은
조선소 건설에 대한 포기를 거둬들이고...
청와대에서 물러납니다.

정주영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박대통령 집념이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인줄은 몰랐어"


정주영 회장은 박대통령의 조선산업에 대한 신념과 열정을 알았기에, 차관교섭을 위해 이번에는 유럽쪽으로 눈을 돌려, 영국 버클레이은행에 찾아가서 온갖 노력과 설득끝에, 버클레이 은행으로부터 차관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에 조선산업 진출이 성사되나 싶었지만, 영국의 다른 나라에 대한 차관제공 시스템상 영국의 수출보증신용기금이라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차관 승인을 허락 받아야 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못사는 나라라고 해서 무시당하고 자존심을 짓밝혀서까지 조선산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이제는 더 이상 같은 말 되풀이 하는 앵무새짓은 못하겠다고 하면서 조선산업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국내로 들어오려고 영국공항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이런 정주영의 행보에 대해 알고 있는 박대통령이 중앙정보부 부장 이후락을 시켜 정주영을 청와대로 오게 해서 다시 만납니다.

박대통령과 정주영 회장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박대통령은 정주영회장에 대해 한마디의 질책도 없었습니다.

박대통령 : 차 듭시다.
비행기 오래타고 피곤할텐데, 옷도 갈아입지 않고 청와대로
와 주시니 고마워요

정주영 회장 : 버클레이 은행에서 차관승인을 해 주었습니다. 4천 3
백만달러는 곧 차관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다음 수
출입은행에서 또 다시 승인을 받아야 된다기에..........

박대통령 : 정회장,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고 있어요.
내 자신을 던지고 대의를 선택하면 자신을 따르는 우군이 생
기고 길이 있습니다. 내일 당장 영국으로 떠나 주시오.


그 때, 박대통령과 정주영 회장과의 독대를 지켜 본 이한림 장관과 김학렬 부총리는 그 때의 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무서운 어른입니다. 전율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박대통령을 독대한 정주영은 이렇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대통령을 위해서 내 몸을 던지기로 했다. 지금은 국가 경제력이 워낙 모자라서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앵무새가 되어도 좋고, 자존심이 짓밟혀도 좋아. 일국의 대통령이 자존심을 버리고 부탁을 하는데 내가 못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정주영 회장은 다시 영국으로 출국해서, 버클레이 은행으로부터의 차관승인을 거친 뒤, 영국수출입은행을 찾아가서, 다시 교섭끝에 영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도 승인을 받아서 배를 건조하게 됨으로써, 현대의 조선산업이 시작되었고, 현대의 조선산업은 주력산업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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