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적들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토요일 밤 9시 10분

강적들

대한민국 최강! 센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품격과 저품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시사 쇼!

시청소감

시청소감
행주대첩때 아줌마들이 돌 나른적 없습니다. 정정해주세요.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2014.05.29고명진 조회수 994

행주치마는 행주산성과 관련없이 그 이전부터 있던 단어이고


실제 행주대첩은 산성에서 석전으로 막은 전투가 아니라


권율이 이끄는 부대가 목책을 쌓고 배수진을 친후 화차 등 화약무기를 동원해서 밀려오는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입니다.


행주산은 실제 가보면 알겠지만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까운 산이고, 명칭만 산성이지 실제로는 성도 없고 주민들이 거주하지도 않았습니다.


정정 바랍니다. 잘못된 상식입니다.


참조 행주대첩 고증만화 : http://faceless.egloos.com/4224359


행주치마에 대한 오해 : 일반적으로 돌로 된 산성에서 백성들까지 끌어모아 돌로 적을 때리는 처참한 전투를 펼쳤다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산(사실 행주산은 높이가 100미터 정도여서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민망하고 되려 구릉에 가깝다)에 목책을 2겹 정도로 둘러치고 공방전을 벌였다. 행주 치마는 백성들이 돌을 모으기 위해 입은 치마라 행주치마가 되었다는 주장은 낭설이다. 행주대첩이 일어나기 두세대 전인 1517년 최세진이 쓴 '사성통해'와 1527년에 지어진 훈몽자회에 이미 행주치마란 단어가 사용된다.


행주산성 주변에는 민가도 없었고 워낙 급작스럽게 진행된 전투라 야사와는 달리 일반민들이 참가할 기회도 없었다. 전투 자체도 농성전이라기 보다는 회전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행주성은 입구가 좁아 대규모 병력이 한번에 다 들어오지도 못하며 뒤가 한강이라 지형 자체가 호리병 모양의 배수진이 된다. 대략 일본군이 북방과 서방에서 돌아서 침공했고 동쪽과 남쪽이 한강으로 막혀있었다.

댓글 0

(0/100)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