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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매주 토요일 밤 9시 10분

강적들

대한민국 최강! 센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품격과 저품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시사 쇼!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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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이해 올바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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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4이원혁 조회수 803

5월 3-4일 방송한 '강적들'의 출연자, 이봉규, 강용석, 김성수의 JP에 관한 토크만담을 보면서 사실과 틀린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0.26 이후 최규하대행이 김종필에게 후임을 사양했는데도 김종필이 이를 수락하지 않아서 긍정적으로 평가를 내리던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견해이다. 사실은 당시 최규하 총리에겐 아무 권한이 없었고, 김종필이 통대에서 선출되는 것을 저지한 것은 오로지 계엄사령관 정승화 총장의 결단이다. 이때는 전두환도 정승화의 눈치를 보느라, JP의 부정축재를 공개하면 정총장이 국민의 영웅이 될 것이라 부추기기도 하였다. 정승화도 당시 상당한 야심이 있어서 글라이스틴 미대사에게 3김중 김종필은 너무 부패했고, 김대중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며, 김영삼은 무능하다는 의견을 은밀히 내비쳤다가, 이게 새어나가자, 김영삼이 가장 화를 내어 변명하였고, 김종필은 침통하게 가라앉는 분위기였으며, 김대중는 과격하다는 수사적 표현이 전해져 희색이 만면하여, 이제 자신은 온건해졌다고 낙관하였다. 그러나 이미 정승화의 심중에는 김대중은 정치계에서 사라져야 할 위인으로 판단하고 또 언론인들에게 공표하기도 했다. 이때의 정승화의 코멘트는 후일 적중한 예언이라고 하겠다. 그후 전두환의 쿠데타도 정승화의 이같은 기조를 이어받은 것이다.

 또한 김종필이 5.16의 주역이라고 한 것도 크게 잘못 안 것이다. 당시 그의 신분은 하극상 사건의 군재판결로 중령으로 예편한 완전 실업자 신세였다. 박정희의 처조카라는 신분으로 광명인쇄소에서 혁명공약 인쇄임무를 맡은 것이 전부였다. 당시 육사8기 등 김종필과 동기생은 주로 참모부서에서 실권이 없었으며, 육사5기인 김재춘, 박치옥, 문재준 대령등이 실병력을 가진 주동인물이었다. 30사단에서 이백일 중령이 쿠데타음모가 이상국사단장이 알게 되어 장도영 총장에게 보고하여 거의 실패하자, 박정희도 거의 포기상태였다. 이때는 장도영도 적극적으로 만류하여 6관구의 김재춘과 공수단장 박치옥 등이 주저앉았으나, 해병대가 뛰쳐나오자 공수단이 따라나오고, 그에 앞서 포천에 있던 6군단 포병단장 문재준과 작전참모 홍종철이 지휘하는 포병단이 육본을 점령하여 상황은 종결되었다. 5.16 새벽 3시경 6군단 포병대가 수십대의 트럭에 무장병력을 싣고 미아리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데 아무도 보는 이들이 없었으며, 원남동 창경원부근에서 웬 청년이 미친듯이 달려가며 만세를 부르는 풍경이 헤드라이트 빛으로 보였는데, 이가 나중에 알고보니 김종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자 김종필은 중앙정보부장이 되어 쿠데타의 일등공신인 문재준과 박치옥을 체포하여 제거하였다. 이것이 비정한 역사의 실상이다. 

 5.16의 성공은 자유당 시절의 특무대와 헌병총사령부를 해체한 가운데 군을 감시할 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정희는 방첩대, 정보부 등을 육성하여 권력을 지킨 것이다.


       이영희, 강만길, 커밍스 등의 돌팔이들이 현대사를 왜곡한 영향과 그 폐해는 너무나 크고 안타깝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함부로 전해지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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