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8일 (일) / 제 77 회
▣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병장
2004년 베트남 파병이 4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올해 이라크 파병 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방송되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병장'' 편에서는 경제 발전을 일으켰다는 미명 아래 외면해왔던 베 트남 전을 정면으로 파헤쳐 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이에 따라 기존의 국방부나 정부기록 자료뿐만 아니라 제작진이 발로 뛰어 만난 참전군인들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베트남 전쟁과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설문조사를 통해 베트남 전에 관한 참전 군 인들의 생각을 들어본다
* 참전 군인들의 생생한 육성을 듣다 제작진은 당시 베트남에 참전했던 군인들을 만나기 위해 함평으 로 향했다. 사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던 함평의 참전 군인들 은 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사병은 죽으러 왔고 하 사관은 고생하러 왔고 장교는 돈 벌러 왔는데 너는 죽으려고 왔냐 고 하더라고." "조실부모하고 없는 살림에 제대해봤자 별 볼 일없 고 안 죽으면 돈 번다는 생각이었지"
함평의 참전 군인 모행원 씨. 그는 제작진 앞에서 베트남 참전 당 시 기록을 처음으로 꺼내들었다. 다음은 훈장과 맞바꾸어 가지고 온 그의 베트남 추억록의 한 구절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 고 또 무시당하는 전쟁이란 무엇이요? 누가 만든 것이요? 사이사 이에 시간은 흐르고 전우들은 마음으로 아니 육체적으로 전쟁을 저주하노라. 전쟁의 도발자를 하늘에 고발하노라"
* 다니엘 엘스버그가 말하는 모어플랙(More Flag) 캠페인의
진실 존슨 대통령은 자유 우방국의 이름으로 25개국에 베트남전 파병 을 요청한다. 이른바 모어플랙(More Flag) 캠페인. 그러나 모어플 랙(More Flag) 캠페인의 결과는 25개국 중 겨우 한국을 비롯한 7 개국 참가였다.
미국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계적 관습에 의거, 한국군 파병 비용은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던 처음의 태도와 달리, 2차 파 병 때부터는 한국군 파병에 드는 모든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기 시 작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칠 것을 요구한다.
미국에게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이 요구되었던 이유는 무엇일 까? 국방부 자문위원으로서 펜타곤 보고서로 명분 없는 베트남 전 쟁을 고발했던 다니엘 엘스버그는 말한다. "단순히 홍보목적을 위 한 것이었다. 미국만이 혼자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는 것이었다."
베트남 파병이 논의되던 당시 드물게 반대의견을 개진했던 강원 룡 목사는 당시 정무담당 참사관이었던 필립 하비브로부터 뜻밖 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함으로써 "백인과 황인종간의 전쟁"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 "황인종간의 전쟁"이라 는 점을 들기 위해 한국군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 누구에게 기회의 전쟁이었는가? 전투병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수당을 받는 한국군. 심지어 월 남군보다도 적은 수당을 받았다. 베트남 파병국인 필리핀과 태국 군의 수당과 비교해도 3분의 1수준이었다. 미국군과 비교하면 20 분의 1수준인 한국군 수당.
정부는 한국의 경제 수준이 필리핀, 태국의 1인당 GNP의 3분의 1 이기 때문에 수당은 적은 액수이지만 어쩔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작진이 조사해본 결과, 한국은 65년도 1인당 국 민총소득은 한국이 약 104달러, 필리핀은 190달러, 태국은 129달러 로 나타났다. 특히 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우리나라의 약 1.2 배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정부는 참전군인들의 낮은 수당에도 불 구하고 파병을 감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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