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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매주 토요일 밤 9시 10분

강적들

대한민국 최강! 센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품격과 저품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시사 쇼!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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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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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8김종원 조회수 964

안녕하세요. 강적들을 재밌게 시청하고 있습니다. 

 

강적들에서 "3김, 그들은 누구인가?" 이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매우 재밌을 것 같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이 세 분은 한국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들이죠.

대한민국 민주화와 산업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분들의 정치인생과 스타일,

그리고 세 분의 관계 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면 재밌겠습니다.

 

1. 이 세 분의 영문 이니셜이 유명하죠.

YS, DJ, JP.

이 중에서 영문 이니셜을 처음 쓴 분은,

아니 우리나라 역대 정치인들 중에서 이니셜을 처음 쓴 분은

바로 JP, 즉 김종필 전 국무총리죠.

특별히 강적들 방송에서 이분들의 실명보다는

영문 이니셜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2. 3김이 젊을 때 아주 훤칠한 미남들이었죠.

이 세 분들이 젊으셨을 때 사진을 보면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김종필 전 총리가 가장 미남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ㅎㅎ

아무튼 이 세 분의 전성기 때 사진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겠습니다.

 

3. 김종필 전 총리는 별명이 '영원한 2인자'였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보면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세 분을

대통령으로 만든 '킹 메이커'이기도 했죠.

김종필 전 총리의 2인자 처세술이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겠네요.

 

4. 영원한 라이벌, 김영삼과 김대중, 김대중과 김영삼!

이 두 분은 평생을 대한민국 민주화에 헌신한 분들이었고

항상 함께 반독재 투쟁을 한 동지였었는데 영원한 동지는 아니었죠.

동지이면서 적이었고 적이면서 동지였었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두 분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돌아가시기 거의 직전에 두 분이 극적으로 화해를 하셨죠.

이 두 분의 관계도 이야기할 게 참 많죠.

그리고 이 두 분은 민주화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고난도 많이 받으셨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때 초산테러도 당하셨고

야당인 신민당 총재 시절에 우리나라  헌정 사상 최초로 의원직 제명도 당하셨죠.

전두환 정권 때는 23일 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셨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초기에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90퍼센트에 육박했고 당시 최고 인기 연예인이었던 최진실 씨보다 인기가 더 많았죠.

김영삼 대통령은 군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청산하고 공직자 재산공개를 실시하고

최초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대통령이었는데 금융실명제를 하기까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하죠.

김영삼 대통령 때 외환위기가 왔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도 좋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5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셨는데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김종필이 총리로 있을 때 일본 도쿄에서 납치당한 적도 있으셨고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서는 사형언도도 받으셨죠.

김대중 대통령은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 되셨고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도 수상하셨죠.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의 고난과 영광의 정치역정이 참 재밌을 것 같습니다.

 

5.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총 9번의 가택수사를 당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였고 정권의 2인자이면서 박 대통령을 이을

후계자였음에도 박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네요.

처삼촌과 조카사위의 관계이면서도 권력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가깝고도 먼 관계가 되었죠.

 

6. 1990년 3당합당이 있었죠.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세 분이 손을 잡고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만들었는데요. 이후에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고

김종필은 집권여당 민자당의 대표가 되었지만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했죠. 그 후에 김종필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하여

1996년 총선에서 50석을 차지하죠.

김영삼과 김종필의 관계도 재밌는 이야깃거리죠.

 

7. 1997년 김대중과 김종필 두 분은 이른바 'DJP 연합'으로 대선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내고

마침내 대선에서 승리하여 이듬해 1998년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반세기 만에(50년 만에)

여야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죠.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씨를 국민의 정부 첫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하는데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거대 야당이었죠)이 김종필 총리 임명 동의안을 반대하여

6개월이나 시간을 끌다가 6개월 후에 찬성을 하죠. 김대중 정부가 초반에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김대중과 김종필이 야권후보 단일화하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서로 정치적, 이념적 노선이 전혀 다른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하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해 보였는데

어떻게 단일화를 성공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결합이라고 두 분이 말씀을 하셨었는데 아무튼

공동정부와 공동여당이 탄생하게 되었고 IMF 외환위기도 극복하게 되었는데

내각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두 분의 공조가 파기되었죠.

김종필 총리는 왜 내각제를 정계은퇴할 때까지 계속 주장했던 걸까요?

97년 대선, 그 때 그 시간으로 돌아가봤으면 좋겠습니다.

 

8. 세 분이 활동한 시대를 '3김시대'라고 하고 세 분의 정치를 '3김정치'라고 하죠.

세 분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큰 공헌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주의 정치를 고착시킨 책임도 크다고들 말하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이렇게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한 것이

한국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요.

그리고 3김정치는 '1인 보스 중심의 패거리 정치'라고도 하죠.

3김정치에 대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평가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9. 세 분의 사생활 이야기도 재밌겠네요. 세 분의 취미라든지 기호, 특기,

유머감각, 붓글씨 솜씨 등도 재밌겠습니다. 특히 김종필 전 총리는

바둑, 서예, 서양화, 피아노, 아코디언, 검도 등에 뛰어나 별명이 '르네상스적 인간'이었죠.

낭만정객이라고도 불린 김종필 전 총리의 어록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몽니'라는 말도 김종필 전 총리로 인해서 유명해진 말이고요.

김영삼 대통령 때는 'YS 시리즈'가 아주 큰 인기를 끌었었죠.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워낙 말실수를 많이 해서 유명한데요.

예를 들어, "한글을 창제하신 위대한 이순신 장군께서~~" 등등의 이야기도 재밌죠.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시절에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즐겨 드셨었죠.

세 분이 즐겨 드셨던 음식 이야기도 재밌을 것 같네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이클 잭슨과도 친분이 있었죠. 김대중과 김종필 두 분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었다는 것인데 이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죠.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은 스캔들이 있었는데 김종필 총리는 스캔들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 부분이죠. ^^

 

10. 세 분의 관계를 한마디로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죠.

이 세 분을 중국의 고전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세 주인공

유비, 조조, 손권과 비교를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는,

김영삼 대통령은 유비,

김대중 대통령은 조조,

김종필 총리는 손권과 비슷한 스타일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각각 한 분씩 마지막으로 어떤 정치인이었는지 요약해서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강적들,

좋은 방송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수요일은 강적들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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