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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칼럼-釜林 사건의 두 가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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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3서경덕 조회수 712

김창균 칼럼
釜林 사건의 두 가지 얼굴

 


입력 : 2014.01.22 05:26 | 수정 : 2014.01.22 05:52      

 

변호사·검사·판사 앞에서 당당히 사회주의 이념 설파한 피고인들


'변호인' 영화에선 겁에 질려 주눅 든 나약한 인물로 그려내


"허구니 사실 따지지 말라"면서 선전 공세 활용하는 二重性 뭔가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부림(釜林) 사건은 1981년 9월 부산 지역 지식인·교사·대학생 22명이 국가보안법 및 계엄법·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피고인 중 다섯 명의 변론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인생 모드가 '돈 잘 버는 세무 변호사'에서 '거리의 인권 변호사'로 변환되는 장면이다.

 

노 전 대통령이 담당했던 피고인은 노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1981년 10월 노무현 변호사가 구치소로 찾아왔다. 우리를 철없는 학생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그래서 우리를 변호하려면 '전환시대의 논리'와 '후진국 경제론'을 읽어 보라고 했다. 노 변호사가 그 책들을 읽으면서 많이 변해가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부림 사건) 학생들은 나에게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와 빈부 격차의 모순 같은 문제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읽다 붙잡혀온 그 책들을 읽기를 권했다. 그렇게 해서 꽤 많은 책을 읽게 됐으니 그들이 나를 운동으로 끌어들인 것"이라고 했다. 피고인들이 담당 변호사를 의식화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부림 사건 담당 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는 주모자 격인 이상록씨가 자신과의 첫 대면에서 기(氣) 싸움을 걸어왔다고 했다. 이씨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矛盾)에 의해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게 돼 있다. 지금은 검사님이 우리를 심문하지만 그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부림 사건 담당 판사가 판사실에서 노 변호사에게 "그놈(피고인)들 말하는 거 좀 보세요. 완전히 빨갱이들 아닙디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판사가 일찌감치 유죄를 예단했다는 점을 비판하기 위해 쓴 구절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부림 사건 피고인들이 재판정에서도 사회주의 이념을 당당하게 설파했음을 증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부림 사건은 관객 1000만명을 넘긴 영화 '변호인'의 핵심 줄거리를 이룬다. 영화 속 피고인들의 모습은 당시 피고인들의 실제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아이돌 그룹 출신 꽃미남이 배역을 맡은 '국밥집 아들' 대학생은 야학(夜學)에서 문학을 가르친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여공(女工) 학생이 "첫사랑 얘기나 한번 해 보라"고 짓궂게 농담을 걸자 얼굴이 빨개진다. 바로 그 순간 형사가 들이닥치고 '국밥집 아들'은 공안 분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는다. 겁에 질린 그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한마디도 못한다. 신(新)군부 철권통치와 맞서 싸우기엔 너무나 나약한 모습이다.

 

변호사·검사·판사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소신을 피력했던 피고인들을 영화는 왜 이렇게 왜소하게 그려냈을까. 그렇게 해서 피고인들에 대한 연민을 이끌어 내는 한편 경찰·검찰·판사가 합작으로 용공(容共) 혐의를 조작한 것처럼 만들어 분노의 스파크를 일으키자는 계산을 했음 직하다. 또한 악(惡)의 3각 축에 홀로 맞선 '수퍼맨 변호사'의 활약상을 부각시키는 극적 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실상은 노무현 변호사는 부림 사건 변론팀에서 보조적 역할을 맡았을 뿐이어서 당시 수사 검사였던 사람들은 노 변호사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고 있지 못한데도 말이다.

 

1982년 대법원은 "(부림 사건) 피고인들은 자유민주주의 현 체제를 뒤엎어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건설하려 했다"면서 원심 유죄 형량을 확정 지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과거 시국 사건들이 재심 과정을 거치며 판결이 뒤집어졌지만 부림 사건의 보안법 유죄 혐의는 유지됐다.

 

'변호인'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영화가 실제 사건과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문제 삼지 말라는 뜻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영화 속 얘기가 100% 진실인 양 선전 공세에 활용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영화 속에서 검찰이 경찰과 용공 조작을 사전 모의하는 대목은 허구다. 그런데 친야(親野) 매체는 '악질 검사'의 실제 인물이 새누리당 의원이라면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친노(親盧) 진영 사람들은 '변호인' 영화를 계기로 부림 사건이 전면 재조명돼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부림 사건 일부 피고인에 대해 진행 중인 재심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가 흥행했으니 사법적 판단도 바뀌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부림 사건에는 영화가 의도적으로 눈감고 못 본 체한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그것까지 모두 드러내놓을 생각이 아니라면 영화는 영화로 놔두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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