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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특별기획드라마] 불꽃속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빈곤과 절망을 딛고 경제 발전을 위해 종합제철소를 건설하려는 주인공과 엇갈린 운명으로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의 처절하고 뜨거운 사랑과 야망을 그린 드라마








불꽃속으로 - 시청자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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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강국임을소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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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9이중훈 조회수 535

 황금보검의 비밀, 이종호 저


칼 한 자루에 얽힌
한국 고대사 최대 수수께끼와 유럽 역사

1973년 6월 경주시 계림로에서 돌무지덧널무덤과 독무덤 등이 발굴됐다. 발굴된 무덤 55기 가운데 계림로 14호 무덤에서는 국보급 보물이 270여 점이나 출토됐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유물이 바로 황금보검이었다.
황금보검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황금보검이 신라에서 제작된 칼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제작된 곳이 경주에서 무려 8,000킬로미터나 떨어진 동유럽 트라키아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500년 전에 로마 기법으로 제작된 황금보검은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뛰어넘어 경주에 묻힐 수 있었을까? 5세기 유럽이라면 훈족 왕 아틸라가 패자로 군림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황금보검은 아틸라가 보내준 선물이었을까?
〈황금보검의 비밀〉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왕성한 연구와 저작 활동을 해온 이종호 박사가 그동안 연구해온 흉노?훈족과 한민족의 친연성을 총정리한 책이다.

1,500년 만에 깨어난 황금보검이 증언하는 한반도 고대사

5세기나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보검은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출토한 유물 중에서 유일하게 신라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 신라 칼은 한쪽에만 날이 있는데 황금보검 칼집 안에 있는 철검은 양쪽에 날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칼은 누가, 어디에서 만든 것일까? 지은이는 황금보검이 제작된 곳과 시기에 주목한다.

학자들이 놀란 것은 이 황금보검이 로마 기법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이 기법의 진원지는 신라에서 거의 8,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동유럽 트라키아 지역이고 황금보검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5세기에는 훈족이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p. 18

지은이는 한걸음 더 나가 신라를 세계를 상대로 활발히 교류한 나라로 설명한다. 신라는 유럽의 패자인 로마제국과도 교류한 나라였던 것이다. 그 증거가 중국 대륙에서보다 한반도 남쪽 옛 신라 영역에서 로마제국 유물이 더 많이 출토한다는 점이다. 신라의 찬란한 금공예술에 로마 기법 또한 한몫한 셈이다.

앞에서 설명했지만 이와 같은 그리스·로마의 금속가공 기법이 유독 신라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은 이 기술이 로마 세계에서 도입됐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로마 세계의 기술이 신라에 들어와 신라 문화와 결합했다는 것이다. ---p. 30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 게르만족을 내몬 훈족 그리고 흉노족의 서천

세계사에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중요한 것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현대 유럽 체계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한 것은 훈족의 침공이었다. 훈족의 압도적인 기세에 쫓긴 게르만족이 로마제국 영토에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로마제국의 종말이 시작됐고 거대한 영토는 갈기갈기 찢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훈족의 유럽 침공은 4차에 걸친 흉노족의 서천을 배경으로 한다. 흉노족의 서천은 흉노족과 한나라의 오랜 전쟁 때문이었다. 이처럼 역사와 민족은 끊임없이 물고 물렸다. 아시아 대륙에서 벌어진 흉노족과 한나라의 치열한 전쟁이 유럽 대륙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처럼 지은이는 로마제국과 게르만족, 게르만족과 훈족, 훈족과 흉노족을 연결하면서 역사가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는지를 보여준다.

마침내 드러나는 황금보검의 비밀

1994년에 독일 방송사 ZDF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스핑크스, 역사의 비밀〉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한 훈족을 집중 취재했는데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이 놀라웠다. 훈족의 원류로 한국인을 지목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내놓은 근거 중 하나가 바로 동복(청동솥)이었다.

동복은 기마민족과 관계가 깊다. 기마민족은 자신들만의 특성과 생존법, 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말에 싣고 다니는 동복이다. 동복은 기원전 8세기나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출현해 기원후 5세기나 6세기 무렵에 소멸되는데 유목 민족의 특성상 매우 넓은 지역에 걸쳐 발견되고 있다. ---p. 183

지은이는 동복 외에도 복각궁, 편두, 순장, 돌무지덧널무덤 등이 흉노에서 비롯한 무기, 풍습임을 들어 흉노와 신라, 가야의 친연성(親緣性)을 설명한다. 이와 함께 대변혁을 암시하는 유물들을 제시함으로써 신라, 가야 지배계급의 변화와 새로운 지배 집단의 도래를 주장한다.

분묘는 제사 행위를 하는 장소로, 자신과 선조의 계승 관계를 확인하는 곳이므로 분묘 파괴 행위는 계승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지 않는 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이런 행위가 갑자기 일어났다는 것은 북방 문화의 유입이 기존 토착 문화를 배척하며 나타났다는 것을 뜻한다. ---p. 236

그렇다면 흉노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철이다. 흉노가 강성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철기 무기로 무장한 기마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반도 남부 지역이야말로 질 좋은 철광석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생산된 철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거래될 정도로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철 기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진한, 변한 지역에서 질 좋은 철광석이 많이 생산된다는 정보를 어떤 경로로든 알고 있었다면 석탈해(昔脫解), 김알지(金閼智), 김수로(金首露) 등 흉노족 유민들이 다른 지역을 제치고 왜 가야와 신라를 최종 목적지로 삼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p. 245

두 가설에 등장하는 유민도 북방 기마민족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들 중 일부가 한반도 남부에 정착했다면 북방 기마민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제철 기지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성립한다. ---p. 249

곽거병에게 격파된 휴저왕 태자 김일제는 흉노와 한민족을 연결하는 고리다. 신라 김씨의 시조 김일제를 살펴보면 한민족의 뿌리가 흉노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무제는 김일제에게 흉노의 제천금인(祭天金人)을 뜻하는 김(金)을 성으로 하사했다. 앞에서 김씨의 시조로 화관지후 등이 거론되고 중시조로 김일제를 거론된다고 했지만 족보 전문가인 장렌위안(張人元)은 김일제가 무제에게 김씨 성을 받고서야 비로소 김씨가 시작됐다고 적었다. _255쪽.

지은이가 흉노 도래설과 함께 주목한 것은 신라가 유럽에까지 알려져 있는 나라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신라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긴 아랍인들은 신라를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랍인들을 사로잡은 것은 신라가 황금의 나라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은 신라에서는 개 목걸이도 금으로 만든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지은이가 민족의 시원과 고대사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각보다 강력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예로 소련이 해체된 다음에 등장한 독립 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

20세기를 뜨겁게 달군 사건 중 하나는 1917년에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선 일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무장한 공산주의자들이 봉기해 전제군주 체제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했다. 소련은 그 뒤로 70여 년 동안 서방 자본주의 진영과 각축하며 세계를 양분했다. 그런데 1990년에 소련 체제가 무너지면서 많은 독립 국가들이 탄생했는데 신기하게도 독립 국가의 기반이 바로 민족이었다. ---p. 285

〈황금보검의 비밀〉은 한민족의 시원이 대륙을 달리던 기마민족이었음을 그리고 신라는 한반도 구석에 있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로마제국뿐만 아니라 서역, 아랍 세계와 교류한 나라였음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리고 새롭게 드러난 역사의 중심에는 1,500년 만에 깨어난 황금보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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