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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특별기획드라마] 불꽃속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빈곤과 절망을 딛고 경제 발전을 위해 종합제철소를 건설하려는 주인공과 엇갈린 운명으로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의 처절하고 뜨거운 사랑과 야망을 그린 드라마








불꽃속으로 - 시청자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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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철의 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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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7이중훈 조회수 527

[고구려인들의 용맹성을 잘 표현한 '수렵도(狩獵圖)'.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현에 위치한 고구려 무용총에서 발견된 벽화.  고구려인들이 사용한 화살촉은 당시로선 세계 최고 철기기술로 제작됐다.  서울 구의동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촉을 성분분석한 결과, 탄소량 평균 0.51%의 강철을 쓴 것으로 확인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현대에도 특수 공구들에서 쓸만한 수준의 탄소량이다.  2000년 1월 똑같은 재질로 복원한 고구려 화살촉을 이용, 삼국시대 갑옷인 철제 판갑(板甲)을 표적으로 관통 실험을 실시했다. 이는 철제 판갑을 쉽게 관통됐다. /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삼한 때부터 동아시아 주름잡은 우리 철"


지금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 고대에는 그것이 곧 권력이었다. 철강왕 카네기는 "철을 가장 싸게 만드는 국가는 다른 국가들을 발 아래 둘 것"이라 말했다.


한민족과 철.  그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검증 가능한 한민족의 철기문화는 가야(加耶) 때에서 시작된다.  부족 연맹국가인 가야는 B.C 2세기 초부터 철기문화를 일으켰고, 나중에 삼한(三韓) 때는 변한이라 불렸다. 


이미 당시 가야의 철기 제작기술 수준은 주변국들을 압도했다.  특히 가야 중심지인 경남 김해, 고령 창원 일대는 당시 유명한 철광석 산지였던 것이다.  

 

 


[창원 다호리유적에서 출토된 가야의 철기들.  일부 학자들이 한반도 철기문화의 발흥지로 보는 다호리 유적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 232 일대 해발 20m 내외의 구릉과 논밭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야국에서 철을 생산하여 한(韓),예(濊),왜(倭) 모두 와서 철을 얻어간다.(國出鐵韓濊倭皆從取之)"


'삼국지 위지동이전-변진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처럼 우수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가야는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세력의 맹주로 성장한다.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이라는 허무맹랑한 학설로 이 대단한 가야를 자신들 역사라 우기는 것도 '철 강대국'을 탐 낸 이유다.

 

 


[김해 양동리고분군 Ⅳ-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원통형철기'. 길이 15.2㎝에 위쪽 지름 2.7㎝~3.5㎝ / 사진=연합뉴스(국립김해박물관)]


 

북방으로부터 온 한민족의 '철'


가야의 철기문화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이남규 교수(한신대ㆍ고고학)는 "가야의 철기제작 기술은 대체로 그 이전 단계부터 전해져온 주조철기 제작 기술과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해 낙랑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단조철기 제작 기술이 결합한 것"이라 주장했다.


인류가 처음 철을 사용한 것은 기원전 8세기 무렵 소아시아지역에서 활동한 히타이트족이란 게 정설이다. 


이 무렵, 히타이트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유라시아 초원을 지배한 스키타이안.  청동기와 철기 무기를 기반으로 성장한 이들은 유러피안과 몽골리안 유전자가 절묘하게 1대1로 섞인 고대민족으로 흉노족과 밀접한 친연관계를 가진다.


바로 이들 스키타이안과 흉노가 가야국에 철기문화를 전수한 것이란 학설이 제기됐다.  이들의 철기문화는 연(燕)나라, 또는 낙랑을 통해 한반도로 전해진다.  또 이남규 한신대 교수 등 일부 사학자들은 시베리아 철기문화가 러시아 극동을 통한 경로로도 전파됐다고 주장한다.


흉노의 후예로 알려진 신라 김씨 왕족들.  한민족에 가장 흔한 성씨인 '김(金)'이 바로 철기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이 쇠금(金)자는 쇳물을 녹이는 도가니나 거푸집을 형상화한 글자였다.  4세기 전까지 신라 역시 강력한 철 권력을 기반으로 한 가야의 세력권에서 성장한 부족국가였다.  김씨였던 신라 4대왕 수로왕이 철의 지배자였으며, 스스로 야철 기술을 지닌 군주였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한민족, 철과 함께 살아왔다"


만주 북부와 한반도 남부, 더 거슬러 올라가 알타이지역.  철광석 산지가 즐비한 이 지역이 바로 우리 선조들의 주 활동무대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동북아 최강자로 군림했던 고구려 역시 힘의 밑바닥에는 어김없이 '철'이 있었다.  고구려의 화살촉에 쓰인 강철이 한나라나 수나라의 그것보다 월등히 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 지어져 드라마 촬영 세트로 쓰이는 '고구려 대장간마을' / 사진=구리시청 홈페이지]

 

 


[유영기 씨가 복원한 고구려 화살촉 / 사진=백제군사박물관]


이후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우리민족은 철기기술에 대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중세와 근세를 거치면서 국운이 쇠해진 것 역시 그와 무관치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할 때 씁쓸할 뿐이다.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파이넷스 공법 일관제철소에서 첫 쇳물을 녹여내고 있다. / 사진=포스코]

 


"포스코, 다시 세계를 제패하다"


우연이었을까?  현대에 와서 포스코가 세계 철강업계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올라선 것은?


668년, 만주대륙에서 고구려가 사라지고, 그로부터 1305년이 지난 1973년에 우리민족은 경북 포항에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현대식 용광로에 불을 지핀다.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 최초로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흐르는 역사를 이끌어낸 후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과 건설진들이 환호하는 모습 / 사진=포스코]


그 길로 포스코는 세계 굴지의 철강사들과 어깨를 겨뤄 불과 설립 50년 안에 세계 어느 철강기업도 넘보기 어려운 '철의 아성'을 구축한다.  자원도 기술도 전무했던 설립 당시로 보면 기적일 뿐이다.  포스코인들의 혼 속에도 그런 '철'에 대한 민족적 잠재력이 작용한 건 아닐까? 


현재 포스코는 세계 6위 조강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6년 간 철강분야 특허출원 실적에서 단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포스코가 보유한 철강특허는 모두 1만5000여 건에 달한다.


세계적인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가 포스코를 2010년 이래 4년 연속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철강기업으로 선정했다.  '파이넥스(FINEX) 공법'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높게 평가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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